본문 바로가기
과학 Tip

물리학에서 말하는 창조적 상상이란 무엇일까

by JJJlee 2022. 4. 25.

우리는 과연 창조적 상상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만일 그게 가능 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연습하고 훈련하고 가르치고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수백 년 동안 끊임 없이 숙고해왔다. 신경생물학자들은 뇌의 구조와 신경 시냅스 간의 연결구조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고 애써왔다. 아직 완전한 답은 구해 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창조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요소들은 과소평가되고 또 간과되고 있다탁월한 사색가 창작가, 발명가들의 경험이 그것이다. 그들의 내적 경험들은 창 조적 사고와 관련된 모든 의문을 풀어주기에 충분치 않지만 그 연구 를 위한 중요하고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줄 수는 있다. 무엇보다 그들 의 경험은 사고 자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충분하지 않음을 말해주 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관념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논리적 사고의 형태가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인슈타인이 물리학문제를 푸는 데 수학 공식과 숫자, 복잡한 이론과 논리를 동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 로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 Howard Gardner*가 최 근에 쓴 책《열정과 기질 Creating Minds)에서도 아인슈타인을 논리수 학적 사고의 전형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동료들은 그가 상대적으로 수학에 취약했으며, 자신의 작업을 진척시키기 위 해 자주 수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인슈타 인은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수학이 애먹인다고 걱정하지 말게.. 나는 자네보다 훨씬 심각하다네라고 썼다. 그가 동료인 자크 아다마르 aques Hadamard>에게 털어놓은 대로라면 아인슈타인은 남다르게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고 볼 수 있다. "언어라는 것, 글로 된 것이건 말로 된 것이건 간에 언어는 나의 사 고과정 안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고과정 에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심리적인 실체들은 일종의 증후들이거 나 분명한 이미지들로서, 자발적으로 재생산되고 결합되는 것들이 다. 내 경우에 그 요소들이란 시각적이고 때로는 '근육까지 갖춘 것 들이다. 모종의 '사고실험 thought experiment에서 그는 자신을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광자光子라고 상상했다. 리처드 파인먼은 문제를 풀지 않고 느꼈다. "직관인가 수학인가?" 라고 발명가이자 SF소설가인 아서 C. 클라 크Arthur C. Clarke*는 묻는다. 우리는 진리를 찾아내기 위해 모형을 사용하는가? 아니면 진리를 알아낸 다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수학공 식을 가동하는가? 그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후자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다음처럼 설명했다.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 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이것은 수학이나 형식논리학이 아인 슈타인에게 부차적인 수단이었음을 말해준다. 기존의 말이나 다른 기호들(추측컨대 수학적인 것들)은 이차적인 것들이다. 심상이 먼저 나타나서 내가 그것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게 된 다음에야 말이나 기 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자는 공식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수학적 언어로 사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만의 직 관적인 통찰을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 표현해야 한다. 매클린턱 은 이렇게 말한다. 과학적 방법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직관적 으로 알아낸 어떤 것을 과학의 틀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다른 과 학자들도 직관적으로 깨달은 후에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2단계 과정 을 거친다고 말하며 매클린턱의 의견에 동의한다. 물리학자인 리처 드 파인먼 Richard Feynman* 역시 수학은 우리가 본질이라고 이해한 것을 표현하는 형식일 뿐이지 이해의 내용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직관적으로 문제를 보고 느꼈던 그는 내가 문제를 푸는 과 정들을 보면 수학으로 해결하기 전에 어떤 그림 같은 것이 눈앞에 계 속 나타나서 시간이 흐를수록 정교해졌다 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일반적인 인 식은 과장된 것이다.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첫째, '느낀다'는 것이다. 이해하려는 욕구는 반드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과 한 데 어우러져야 하고 지성과 통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상력 넘치 는 통찰을 낳을 수 있다. 실제로 생각과 감정, 느낌 사이의 연관성은 《데카르트의 오류 Descartes' Error》라는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 책 은 마음(생각)과 몸(존재 혹은 감각)의 분리를 말한 철학자(데카르트)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 지오 Antonio Damasio*는 갑작스러운 사고나 뇌졸중, 종양으로 정서적 감응구조가 총체적으로 바뀐 신경질환자들은 합리적으로 계획을 세 우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서적 으로 몰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느낌과 직관은 합리적 사고의 방해 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다마지오에 게 있어서 몸과 마음, 감정과 지력은 불가분의 것이었다. 우리는 그 의 주장에 동의한다.

 

과학자들은 느낌으로 논리적 개념에 이른다.

그리고 모든 학문분야에서 창조적 사고와 표현은 직관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놀라워한다. 허브 사이먼 Herb Simon과 노 엄 촘스키 Noam Chomsky 같은 인지과학자들은 사고를 단지 귀납적이 고 연역적인 절차나 언어학적 규칙으로 생각한다. 심지어 《열정과 기질》, 《마음의 틀 Frames of Mind》과 같은 저서에서 다양한 사고법의 개념을 진전시킨 하워드 가드너 같은 학자조차 창조적인 사람들의 사고는 자신을 표현하는 양식에 따라 분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 드너는 아인슈타인이나 매클린턱, 파인먼 같은 과학자는 논리수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로, 시인이나 작가들은 언어로 생각하는 사람들 로 분류했다. 무용수는 몸짓으로, 화가들은 시각적으로 사고하며 심 리학자는 개인의 내면을 사고하는 사람, 정치가는 개인과 개인 사이 를 사고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분류는 마치 제빵사가 빵을 만들기 위해 이스트를 사용한 다는 말만큼이나 당연해보인다. 그러나 소다빵이나 납작빵을 만들 때는 이스트가 필요없다. 그리고 이스트로 말하자면 맥주나 시리얼 같은 다른 먹을거리를 만들 때도 쓰인다. 요리를 하든 생각을 하든 한 가지 재료만으로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의 지적 과정 중에서 단 한 가지 요인만을 가지고 개인을 분류한다는 것은 아인슈타 이을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것만큼 그릇된 것이다.

 

댓글0